영화 <나랏말싸미>가 지난 7월 24일 개봉했다. 한글 창제의 여러 설 중 하나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드는 데 신미 스님이 협력한 이야기를 다룬다.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봉준호 감독은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창조의 순간을 코앞에서 목격하는 짜릿함이 있다”며 호평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역사를 왜곡했다, 감독의 종교적 욕심이 과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한글 창제설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지만 이런 시시비비에 가려 우리가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 숭유억불(崇儒抑佛)의 조선에서 우리말로 된 불교책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언해불전, 정교한 논리의 사상서

동국역경원 초대원장을 지냈던 운허 스님은 한 자 경전을 한글화하는 역경(譯經) 사업에 천착했 다. 운허기념사업회 언해불전연구소는 “다시 태 어나도 역경 사업을 하는 게 소원이다”라고 말씀 하셨던 운허 스님의 뜻을 계승하여 15세기 언해 불전을 전산화하고 보급하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 언해불전연구소 오윤희 소장과 운허기념사 업회 이사이자 언해불전보급단장인 가산 선우 스님을 만났다. 스님이 내려주는 차와 함께 언해 불전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선우 스님: 『언해불전』은 세조가 세종의 뜻을 받 들어 불경을 번역하고 간행하던 기관인 간경도 감(刊經都監)을 통해 간행한 조선 시대의 한글 불 전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이 최초로 한글로 기록 된 것이기에 가치가 있지요. 『언해불전』은 굉장 히 조직적으로 구성된 책입니다. 여러 주석서를 첨부해서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든 최고의 참고서 라고 할 수 있지요. 저는 『언해불전』이 소통의 근 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글의 초기 자료인 만큼 앞으로 더욱 큰 나래를 펼쳐 나갈 수 있다고 믿어 요. 남북의 통일된 언어를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가치가 있을 겁니다.

오윤희 소장: 『언해불전』은 그 형식이 무척 우수 하고 아름답습니다. 15세기에 이렇게 훌륭한 책 을 만든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속장경, 주석서를 중심으로 편집이
되어 있는 『언해불전』은 그저 불교 경전을 우리 말로 옮긴 책이 아닙니다. 눈부시게 발달한 주석 서 문화를 보여주는 표본이고, 정교한 논리로 이 어지는 사상서라고 할 수 있어요. 『언해불전』만 의 독창적인 편집과 구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 니다. 책 전체가 하나의 도식으로 그려지지요. 상 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풍성하고 다채로운 표현 들도 인상적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시대에 오히 려 번역이 퇴보된 것이 아닌지, 일본의 번역을 성 찰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닌지, 왜 지금은 한자어를 당연시 받아들이고 있는지 등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오롯이 담다

오윤희 소장: 『언해불전』은 불교 경전의 핵심이 농축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평등’과 ‘자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어요. ‘아롬’ 즉, ‘안다’ 는 것을 근간으로 모든 중생이 평등하다는 것이지 요. 여기서 안다는 것이 누군가 가르쳐 준다고, 또 공부한다고 아는 게 아닙니다. 단지 아는 것이지 요. 『언해불전』은 부처님의 말씀을 직관적으로 전 달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번득하지요. 헤 아리거나 따지지 않고 즉각 반응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한글대장경의 구절인 ‘어식(於食)에 등 자(等者)는 어법(於法)에 역등(亦等)할새’를 20세기 의 우리말 번역은 이렇게 적습니다. ‘먹는 것에서 평등할 수 있으면 법에서도 평등할 수 있다’고요. 하지만 「능엄경언해」의 구절, 15세기 『언해불전』 의 우리말 번역을 보면 ‘밥에 평등한 이는 법에도 평등할새’입니다. ‘밥의 평등, 법의 평등’이 번득하지요. 평등이란 말을 『언해불전』은 ‘한가지’라고 새기는데요. 개와 돼지도, 아메바도 저마다 밥을 먹어야 살지요. 밥을 먹는다는 것, 즉 먹어야만 한다는 건 모두 한 가지입니다. 한가지로 밥을 먹는 일, 그래서 이 일은 한가지의 법이 됩니다. 한가지 밥과 한가지 법, 밥의 평등이고 법의 평등인 셈 이지요. 『언해불전』은 어찌 보면 불교계가 자성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습니다. 본래 부처님의 뜻, 밥의 평등과 법의 평등으로 돌아가자는 것, 왜곡하지 말고 단순하게 고결하자는 것이지요.

선우 스님: 지치고 힘든 마음을 다스리고자 하는 현대인들에게 ‘명상’이 화두가 되고 있는데요. 『언해불전』의 「능엄경언해」를 보면 ‘보아 살펴 사랑할 때 이르지 못할 것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관(止觀), 즉 마음을 고요히 하고 관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헛됨을 멀리하고 끊어낼 수 있 다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언해불전 전산화, 우리말로 사유하는 미래 모델을 모색하는 일

오윤희 소장: 『언해불전』은 추상어를 쉬운 우리 말로 새깁니다. 한자어 없이 쉬운 우리말로 풀지 요. 그래서 저는 『언해불전』의 말투를 ‘우리말로 하는 사유의 모델’이라고 부릅니다. 15세기 이후 완전히 잊힌 말투, 고려-조선의 우수하고 독창 적인 책의 역사, 지식의 기술과 함께 우리 말투의 논리와 사상을 실증하려는 것이 우리가 하는 프로젝트의 목적입니다. 『언해불전』의 보편적인 가 치(책을 다루는 기술, 언어, 논리, 사상 등)를 새로운 문헌 전 산화 기술에 바탕을 둔 색인, 사전, 역해 등의 방 법으로 실험, 실증하겠다는 것이지요. 실증을 통 해 세종의 언어 정책을 새롭게 조명하며, 한자 말 투를 반성하고 우리말로 사유하는 미래의 모델 을 모색하자는 것입니다. 현재 방대한 분량의 『언해불전』을 전산화하 는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5세기에 우리말을 쓰던 고유의 방식이 있는데요. 국어학자들도 불 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알기 어려운 내용이에요. 더욱이 불경과 달리 주석서는 접근하기가 무척 어렵고 복잡합니다. 일단 여러 학자는 물 론 일반인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통로를 열기 위해 전산화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또 다 른 연구들이 시작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전산화를 완료하여 향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사람들이 손쉽게 볼 수 있도록 보급하는 것이 목표이지요. 『언해불전』에 ‘카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뉘 능 히 밖을 향해 정진 카냥하리오’라는 구절에서 나 오는 카냥은 과(誇)란 글자를 새긴 것입니다. 과는 과시하며 자기를 드러내는 일이지요. 정진하는 사람이 밖을 향해 자기를 드러낸다. 그런 것이 정 진 카냥입니다. 정진하고자 마음먹으면 가리고 고르며 마음이 더러워지고 카냥하면 마음이 망 가진다고 합니다. 제가 누구고, 맡은 직책이 무엇인지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언해불전』 자체의 가치를 많은 사람이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우 스님: 『언해불전』을 전산화하고 온라인을 통해 보급하는 것은 곧 역사를 만드는 일이지요. 자라나는 청소년, 또 노인들도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언해불전』 전산화는 끝이 아니 라 시작입니다. 또한, 기존 『언해불전』에서 나아 가 현시대가 번역한 새로운 언해불전, 미래의 언 해불전도 꾸준히 새롭게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잘못된 사관이 있는 자는 트집을 잡는 법입니다. 하지만 『언해불전』은 역사를 바로 아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하다 고 여길 가치가 있지요. 향후 정기적인 워크숍과 학술회의 등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한글 창제, 영화 <나랏말싸미> 그리고 ‘언해불전’

오윤희 소장: 세조가 지은 「능엄경언해」의 발문 에 보면 참여한 인물에 혜각존자 신미, 정빈한씨, 한계희, 김수온, 박건, 윤필상, 노사신, 정효상, 이부, 조변안, 조지, 조두대, 학열과 학조 스님 등이 언급됩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응천혁명(應天革 命), 하늘의 명령에 따라 운명을 뒤집는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세종은 태종의 뒤를 이어 혁명의 완수를 자임한 혁명가였다고 생각해요. 언어 혁명도 조선 혁명의 일부분이었다고 봅니다. 글자와 번역, 출간 등 그 일에 얽힌 사건들을 큰 그림으로 봐야 합니다. 단지 ‘숭불’의 틀에 갇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언해불전』은 인류지식사 관점에서 새로 평가할 일이에요.

선우 스님: 한글 창제를 하고, 『언해불전』을 펴내 백성들이 더욱 소통하며 나눌 수 있는 길을 열어 가려고 했던 게 세종대왕의 뜻이지 않을까요. 한글이라는 언어로 묶인 분단된 남북이 향후 『언해 불전』을 계기로 화합하고 소통할 수 있는 미래도 꿈꾸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질곡의 역사를 헤쳐왔고 언어가 아직도 일본에 예속되 거나 서구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많이 남아 있지요. 『언해불전』은 우리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찾 아가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