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중에 장자와 거사가 함께 중 이바도리라.

반승(飯僧), 스님들에게 밥을 먹이는 일입니다. 언해불전은 ‘중을 이받다’라고 새깁니다.

이받다. [옛말]
대접하다. 봉양하다.
이바디. [옛말]
잔치의 옛말.

이바지. [명사]
1. 도움이 되게 함.
2. 물건들을 갖추어 바라지함.

‘이바도리라’, 국어사전의 풀이입니다. 밥을 먹이는 일이 ‘도움이 되게 함’도 되고, ‘바라지함’으로도 바뀝니다. 중은 부처와 함께 모여 사는 이들입니다. 비구라고도 부릅니다. 밥을 빌어 먹는 이 들입니다. ‘이받다’는 ‘빌다’와 짝을 이룹니다. 그 사이에 밥이 있습니다. 누구는 밥을 빌고, 누구는 밥을 먹입니다.

밥에 평등한 이는 법에도 평등할새,

『능엄경언해』의 구절입니다. 이받다와 빌다의 짝을 다시 밥과 법의 짝으로 읽습니다. 밥을 빌기도 하고, 법을 빌기도 합니다. 밥을 먹이기도 하지만, 법을 먹일 수도 있습니다. 이받고 비는 사이, 평등해야 합니다. 언해불전은 평등을 ‘한가지’라고 새깁니다.

위의(威儀)를 싁싁이 하며 가자기 하여, 재법(齋法)을 공경하더니,
재법(齋法)은 가작하며 싁싁하며 무거워 차례로 다녀 비롬을 이르니라.

엄정(嚴整)이란 한자말을 ‘싁싁이와 가자기’로 새깁니다. ‘씩씩하고 가지런하다’는 말입니다. 평등하게 밥을 비는 모습입니다.

(밥을 비는) 차례는 가난한 이와 가면 이를 가리지 아니하고 평등으로 화(化)하는 것이다. (밥을) 빌되 일곱 집을 넘지 않아야 한다. 일곱 집이 차면 남은 집에는 가지 않는다.

‘싁싁이와 가자기’를 다시 이렇게 풀이합니다. ‘평등으로 화(化)’하다, 화(化)는 ‘……으로 되다’는 뜻입니다. 밥을 비는 일이 그대로 평등으로 변화합니다. 밥을 이받는 일이 또한 평등이 됩니다. 밥을 사이에 두고, 비는 이가 평등하면 이받는 이도 평등해집니다.

구이에 주어, 바리에 담으니,
사해(四海)에 어느 사람이 빚을 갚으리오.

옛날 중이 숗의 집에 니거늘, 쇼히 ‘무엇을 찾는가?’라 물었다.
중이 이르기를 ‘가리지 않음이 옳다’라고 했다.
쇼히 곧 말 구이의 풀을 바리에 담아 주었다.

승속(僧俗)의 짝을 ‘중과 숗’의 짝으로 새깁니다. 중은 빌고 쇼히는 이받습니다. 이 구절에는 밥을 ‘빚’으로 읽습니다. 빚을 빌고 빚을 먹입니다. ‘가리지 않음’은 평등입니다. 밥의 평등이 빚의 평등으로 바뀝니다. 쇼히는 말이 먹던 풀을 이받습니다. 말은 구이의 풀을 먹고 먹이는 이를 태우고 달립니다. 풀을 바리에 받은 중은 어떨까요? 말처럼 쇼히를 태우고 달릴까요?

밥과 법의 짝이라면 중은 법을 먹입니다. 밥으로 빌고, 법으로 갚습니다. 저 쇼히는 저 중의 모습에 평등을 보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평등으로 화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말이 길어졌습니다. 밥을 빌고 빚을 지고자 합니다.

반승(飯僧)이니, 엄정(嚴整)이니, 이런 말보다는 ‘중 이바도리라’, ‘싁싁이와 가자기’, 이런 우리말로 불전을 읽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도 사람이 합니다. 사람이 하는 일, 밥을 먹어야 합니다. 밥을 빌고, 법을 빌고, 밥을 먹이고, 법을 먹이고, 이런 일을 평등하게 한가지로 하려고 합니다.

밥을 주십시요, 법을 주십시요, 함께 가는 길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거들 수 있는 일, 거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